알베르 카뮈에 대한 기록
재작년에 친구가 추천한 책이 있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유럽의 고전문학에 대해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장이 길고 수식어가 많은 편이라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리고 꽤나 인상깊어서, 알베르 카뮈의 글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연달아 페스트까지 읽었다. 그래서 간단한 감상평을 남겨보려 한다.
*이방인*
뫼르소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고 보통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도 어려운 남자다. 현실에서 이런 남자를 만난다면 나 또한 대하기에 아주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왠지 그가 이해되었다. 가끔 사회생활을 하면서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할 때도 많고, 속마음과는 다른 말을 해야 할 경우도, 진심 아닌 배려를 해야 할 때도 많은데 뫼르소는 그런 것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으니까. 일말의 위선이나 가식도 없이 살아가는 그가 부럽기도 하고, 감정의 동요나 기복 또한 별로 없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날 것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뿐이다. 가공한 감정이나 표현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죄인가?
굳이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답변을 하지 않는 것. 혹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 것. 타인이 나에 대해 무언가 오해를 하거나 내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을 하더라도 굳이 그것에 대한 변명이나 설명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 사회적 합의에 따른 인사치레를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진심없이 하기보다는 내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는 것.
그것이 유기적인 동물인 인간이 사회 생활을 하는 데에 장애물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 자체가 잘못이거나 죄악은 아니지 않을까? 어떤 면에서 나는 뫼르소가 쿨해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뫼르소가 끝내 사형을 당하는 이유는 뫼르소가 그런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장례에 눈물을 흘리거나 애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장례가 끝난 후에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에, 수영장에 가 물놀이를 했기 때문에 뫼르소는 사형을 당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기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면 욕을 하고는 한다. 예를 들어 아이를 잃은 사람이 - 아이를 잃은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 밥을 잘 챙겨먹는다던가, 웃는 모습을 보인다던가, 일상을 정상적으로 보낸다던가 할 때. 혹은 성폭행이나 추행 등의 큰 일을 겪은 여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게 사람이야?" 라고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사람의 생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힘든 일을 당한 여자의 생도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생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들이 겪은 일로 인해 남은 삶을 계속해서 절망에 빠져 살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 그리고 타인이 그런 그들의 모습을 불편해할까봐 절망에 빠진 척 해야 될 필요는 더더욱 없고.
하지만 그들이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기에 이 세상의 눈들은 그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 어떤 나쁜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을 보며 나을 것 하나 없는 자기의 삶을 비춰보며 행복을 찾기까지 하는 듯 하다. 그들보다는 자기 삶이 낫다고 자위하는 사람들. 그들이 불행해야만 자기 삶이 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한국 사회는 유난히 타인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들을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고 판단하려 한다. 나는 한국사회의 그런 면에 반항하고 싶었고, 뫼르소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날 것 그대로의 마음으로 살고 싶은 게 욕심일까? 반사회적 인간인 걸까?
*페스트*
페스트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드는 생각은, '페스트'를 '코로나'로 바꾸면 완벽히 호환되겠다는 것이었다. 인류 전체가 이렇게 코로나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읽게 되다니...
나는 페스트를 겪어보지 않아서 그 시대의 참상은 모르지만, 이 책을 보면 알베르 카뮈가 마치 지금 시대로 와서 코로나 시국을 겪고 쓰는 수기 같은 느낌이다. '쥐'로 인해 시작된 페스트, 그리고 '박쥐'로 인해 시작된 코로나는 닮은 점이 너무 많았다.
코로나로 인한 도시 봉쇄와 그로 인해 생기는 이산 가족들, 감염자들은 격리로 인해 가족들을 보지 못하고, 감염되어 죽은 가족들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뤄주지 못했던 장면 장면들이, '코로나'를 '페스트'로 바꿔서 모두 묘사되어 있었다.
어린 자식을 잃고, 혹은 부모를 잃고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인류의 죄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며 헛된 믿음을 전파하는 신부. 안심할 거라 믿었지만 어느 순간 내 옆의 지인이 확진자가 되어있듯이 날로 조여져오는 병의 그물망. 개개인의 가슴 아픈 저간의 사정들이 있지만 정부나 방역당국으로써는 강제적인 방역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 날이 갈수록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과, 심각한 상황임에도 덤덤해지는 사회 분위기마저 빠짐없이 말하고 있었다.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원하여 봉사하는 고마운 사람들, 혹은 당장의 생계를 위해 사지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다수의 사람이 고통을 겪는 중에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구조 덕에 이득을 취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마저.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상황이라 더 와닿았던 것 같다.
하지만 페스트도 끝이 났다.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면역을 얻은 건지, 죽지않고 살아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페스트는 사라졌다.
코로나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생각보다 조금 더 길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류는 극복해낼 것이다. 혹은 적응을 하던지. 아이러니하게도 지구는 건강을 되찾고 있다.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살아나고 있는가 하면 푸르름을 잃었던 숲들이 푸르러지고, 먼지로 가득했던 대기가 맑고 투명해졌다. 너무 아팠던 지구에게 잠시 회생의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더 참다보면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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