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이야기에 숨은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근 10년간의 To read List 였던 두 도시 이야기.
드디어 완독했다!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들어있던지가 거의 10년이 다 된 것 같은데, 이번에 서울도서관에서 빌려다가 읽었다.
버킷리스트까지는 아니고- 로망 정도 되겠다.
내 로망 중에 민음사 고전문학 전집을 다 읽어보겠다는 로망이 있다. 물론 고전문학이 나오는 출판사야 많지만, 민음사가 제일 매력적이랄까? 그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묘하게 매력적인 책들.
민음사 고전문학 시리즈 중에 보면 북커버가 진짜 마음에 드는 아이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에곤 쉴레 그림을 담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나 이우환 화백의 멋진 그림이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라던지. 마르크 샤갈 그림을 담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제목과 북커버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고전문학의 소장 가치에 더해 북커버로 다시 한번 소장 욕구를 자극시키다니, 기획자가 누군지 궁금할 정도로 정말 탁월한 기획력이다.
한 때는 펭귄북스에 빠져서 펭귄북스 시리즈도 몇 권 모았더랬지만, 여전히 고전문학 전집 중 제일은 민음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민음사 고전문학 시리즈에 두 도시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찰스 디킨스의 작품으로는 위대한 유산과 올리버 트위스트만 있는 것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다.
책은 무조건 사서 본다, 책 사는 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는 주의였지만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남편의 직장 바로 근처에 서울도서관이 있어서 가-끔 가다 서울 도서관에 들러 구경을 하다가 알베르 카뮈 책을 처음 빌려서 보고는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책을 읽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작이나 인기 많은 도서들은 항상 대여중이거나 예약 줄이 길어서 사서 보는 게 마음이 편하지만, 고전 문학의 경우에는 너무나 널널한 것. 민음사 외에도 여러 출판사에서 고전 문학을 출판했기도 하고. 그래서 서울도서관에서 하나씩 고전 문학을 클리어 해보기로 했다.
민음사의 두 도시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으로 빌렸겠지만 없어서, 개중에 제일 깨끗해보이는 두 도시 이야기로 골랐다.
이 책은 우선 두께부터 굉장히 압도적이다. 여태껏 읽었던 소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두께다.
고전문학이 으레 그렇듯 문장이 쉬이 읽히지 않아서 앞부분은 한참 걸렸는데, 뒤로 갈수록 책장을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시대적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전반부는 그 시대 파리와 런던의 분위기에 대한 설명, 프랑스 혁명의 배경 등을 설명하는 것에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그런 것 같다.
학창시절에 제일 싫어하는 과목은 사회, 특히 역사 분야였다. 지금은 역사나 세계사가 그저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인데, 그 시절 나의 인식은 ‘역사 = 외울 것 많은 과목’일 뿐이었다. 외우는 것보다는 이해하는 것이 더 마음에 들었고 쉬웠기에 나의 역사 과목 성적은 형편없었다. 게다가 세계사는 배우지도 않았던 것 같다. 십자군 전쟁이라느니 잔 다르크 등을 배운 것 같기도 한데 어느 과목에서 배웠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세계 대전 배경도 잘 모른다. 이 나이가 먹고보니 그것은 상식선의 이야기라 이제 좀 잘 알아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두 도시 이야기의 배경은 프랑스 혁명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던,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왕비라 불리우는 그 마리 앙투아네트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 시기 귀족들과 왕족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으며 서민들의 근로와 납세에 기생하면서 사치스럽고 우아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고, 빈곤한 국고에 허덕이면서도 미국독립혁명에 군사비를 지원하는 루이 16세의 허세스러움 덕분에 프랑스 왕궁은 파산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런 와중에 시민들이 봉기하기 시작했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 시작한 것이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다. 시민들은 농기구로 무장하여 귀족들을 전부 다 잡아다가 기요틴 아래 처형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오랫동안 이어지자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 혁명 정신을 지킨다는 이유로 말 한 마디 잘못하는 순간 기요틴 아래 머리를 내놓아야 했다. 이것이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다.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이 공포정치 시절을 많은 부분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 여자 주인공인 루시의 아버지, 마네트 박사는 귀족들의 불합리함을 밝혔다는 이유로 바스티유에 갇혀 있다 풀려난 시민들의 영웅이지만, 루시의 남편인 찰스 다네이는 (자신은 외면하고 싶어했던) 귀족의 뿌리를 가진, 서민들의 적이었다. 귀족 가문을 몰살하려 했던 드파르주 부인이 찰스를 잡아넣은 것까지야 이해가 되었지만, 시민들이 그토록 따르고 영웅으로 숭배했던 마네트 박사까지 결국엔 귀족의 장인이라는 이유로 죽이려고 하는 대목이 로베스피에르의 기요틴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시켰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어떤 한 생각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열정은 살아갈 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과하면 광기가 되는 것 같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루시와 찰스가 결혼하게 되기까지는 마네트 박사의 불쌍한 마음이 치유되는 과정이 나오면서 시드니 카턴, 스트라이버 등의 추가적인 인물이 소개되고 (물론 집사인 자비스 로리도) 그 후부터는 미쳐 날뛰는 기요틴에 대한 이야기와 억울하게 잡혀 들어가는 찰스 이야기가 시작된다. 찰스는 프랑스에서 서민들을 억압하며 서민들의 혈세를 짜내어 귀족들이 과한 사치를 누리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영국으로 망명하였으나, 자기 때문에 붙잡힌 하수인을 돌봐주기 위해 다시 파리로 돌아갔다가 붙잡힌다. 찰스는 재산을 서민들에게 풀어주기까지 한 인물이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참작되지 않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서민들의 영웅인 마네트 박사가 이리 뛰고 저리 뛴 덕에 잠시 풀려나게 되지만 곧바로 혁명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드파르주 부인에 의해 기요틴의 먹이로 다시 잡혀가게 되고, 게다가 마네트 박사까지 호시탐탐 노리는 드파르주 부인.
두 도시 이야기의 제일 충격적이고 또 감동적인 부분은 이 뒤에 나오지만 왠지 스포하고 싶지는 않다. 책을 읽다 헉 하고 소리낸 적이 별로 없는데 (혹시나 내 블로그를 읽을) 독자들에게서 그 기분을 뺏어오고 싶지는 않으므로.
역사에 평생 관심 없이 살아왔지만 프랑스 혁명에 대해 한 번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그 시기 시대상을 그려내면서도, 마음 아픈 사랑이야기가 가미된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의 나머지 책들도 다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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