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패스보다 더 싸이코패스 같은,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책을 좋아해서 다독을 하긴 했지만 항상 소설만 읽어왔고, 30대가 되고 보니 어느 순간 흥미 위주의 소설만 읽어대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픽션이나 맨날 읽어봤자 인생에 도움 하나 될 것 없고. 소장해봤자 다시 읽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돈이 아깝기도 하고. 그래서 소설은 이제 그만 읽어야지 다짐했는데, 그랬더니 책 자체를 잘 보지 않게 되었다. 그 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얼마 전 친구를 기다릴 일이 있어 영풍문고에서 구경을 하다가 '28', '7년의 밤' 등으로 유명한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 이라는 신작을 발견했다. '28'을 아주 재밌게 읽었던 터이기도 하고 친구가 올 때까진 꽤 시간이 뜰 것 같아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도입부부터 푹 빠져서 집중하고 읽었다. 친구가 왔을 때 아쉽기까지 했던. 집에 가서 훈에게 지나가듯이 이야기했는데, 얼마 전 기념일에 훈이 그 책을 사왔다. 소설책에 쓴 돈이 아깝기도 하고 또 흥미 위주의 소설이라니 시간 낭비를 하게 될까봐 반갑지 않은 마음 한 편으로는, 너무 고마웠다. 요즘 한창 심란하기도 하고 항상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힘들었는데, 꼭 그 책이 내 숨구멍이 되어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은 3일도 채 되지 않아 다 읽어버렸다. 만약 친정 방문 일정이 없었더라면 하루만에 다 읽었을 것이다. 읽는 내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고,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흡입력 있는 책이었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지 거의 5년은 넘은 것 같은데. 장르가 스릴러라 무섭기는 했지만, 역시 현실에서 잠깐 도피처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숨통을 틘 것 같아 좋았다.
정유정 작가는 '28'에서도 느꼈지만 묘사가 정말 탁월하다. 스토리도 참신하고 뻔하지가 않다. 화자를 바꿔가며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점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데에 한 몫 하는 듯 하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얼마전 있었던 살인마 고유정을 모티브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그 사건, 너무 끔찍해서 기사도 눌러보지 않은 사건이었다. 남편을 토막살인했다나? 사건 내용을 잘은 모르지만 한동안 떠들썩했다. 모티브로 했다고 해서 궁금증이 일기도 했지만 지금도 굳이 찾아보고 싶지는 않다. 정서에 좋지 않아.
'완전한 행복'에서 유나는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살인도 불사하는 캐릭터다. 행복의 무결성을 완성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 언니부터 시작해서 남편, 딸까지 - 가스라이팅을 하고, 방해가 되는 인물들은 아예 제거를 해버리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 생겨난 배경을 유년 시절의 결핍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년 시절의 결핍 한 두 가닥쯤이야 없는 사람은 없을테니 한 편으로는 유나에게 공감을 하며 연민을 느낄 수도 있겠다. 불쌍한 아이라고. 언니인 재인조차 그 모든 것이 자기의 탓인 걸로 생각하고 유나의 가스라이팅에 저항 한 번 없이 이리 저리 이끌려다니니까. 사랑하는 사람까지 빼앗기고 말이다. 재인이 유나의 가스라이팅에 당하지 않고 처음부터 준영을 지켰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결국 유나는 무결성을 지키는 데 실패해 완전한 행복을 이뤄내지 못하고 자기 자신까지 제거해버리고 만다. 남겨진 지유와 재인 그리고 은호가 유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항상 범죄나 스릴러에 관심이 많은데, 인간의 심리에 관심이 많은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다. 범죄를 저지르는 그 심리가 너무나 궁금하달까? 그래서 한창 예능에 프로파일러들이 많이 나올 때 그 길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보곤 했다. 재밌었을 것 같다. 나는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예전보다는 싸이코패스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싸이코패스의 원인은 유전적인 영향 + 환경적인 영향 둘 다가 있다고 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에 관여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져있어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있고, 자라오며 그런 면을 개선하거나 완화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어릴 때 아무 이유 없이 작은 동물에게 해를 가한다던가,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에 전혀 공감을 못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이 세심한 케어를 받지 못하면 우리가 흔히 아는 싸이코패스가 될 확률이 크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교육도 다른 방식으로 행해진다는 글을 보았다. 예를 들어 작은 동물을 괴롭히거나 때리면 안된다는 교육을 하면서 그러면 동물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식의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이 아닌, 그런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무서워한다던가 금지되어 있는 행동이라는 식의 사회적 약속의 이유를 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싸이코패스적 측면이 발현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프로파일러든 심리분석가든 정신의학과 선생님이든 이런 사람들을 대하는 게 참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서평도 아닌 감상평도 아닌 애매한 글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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