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전시 / piknic 전시 / 명동 전시 / piknic.kr
첫 포스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바로 어제 다녀온 전시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류이치 사카모토 특별전시로 첫 포스팅을 하고자 한다.
사진이나 그림 전시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굉장히 오랜만의 전시 관람이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내 학창시절 추억의 일부이기도 하다.
들으면 누구든 아, 이 노래! 하고 아는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의 작곡가이기도 한 류이치 사카모토.
처음 그 노래를 들었던 건 중학교 같은 반 친구 덕분이었다.
연주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음악시간이 끝난 후 쉬는 시간에 친구가 피아노에 앉아 건반을 두드렸는데 바로 이 노래였다. 쇼팽,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웅장하고 전형적인 운율이 아니라 마음 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듯한 선율. 그 때부터 나는 뉴에이지에 대해 관심을 더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손으로 치지 않고는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서, 그 날 친구에게 부탁해 악보를 복사했다. 그리고 몇 달을 연습했다.
또래에 비해 손이 많이 작은 나는 옥타브 음을 동시에 칠 수가 없어서 야매로 했지만 그래도 이 곡을 완성했던 날 정말로 기뻤던 기억이 난다.
악보 없이 유일하게 연주할 수 있는 두 곡 중 하나였는데, (나머지 하나는 이루마 노래다) 피아노를 두드릴 수 없는 나날들이 몇년째 지속되니 이제 그마저도 잘 못 치게 되었다. 언젠가 내 집을 가지게 되면 신디를 꼭 사서 밤마다 헤드폰을 끼고 피아노를 치고싶다. 아니면 집에서 피아노를 들고 올라올까?
내가 직접 칠 수 있는 곡은 그 하나지만, 다른 노래들도 전부 좋아서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날 때마다 앨범을 통째로 찾아 듣는데 바로 그 류이치 사카모토가 서울에 특별전시를 열었다니. 나는 당장 달려가야만 했다.
여기에 전시관이 개관한 것은 10일 남짓. 5월 30일에 문을 열었다.
회현역 4번 출구에서 가깝다. 네이버 지도를 켜고 찾아가다 보면 정말 여기에 전시관이 있어? 하는 순간 piknic 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과거 제약회사 건물을 리모델링 한 공간이라고 하는데, 입구부터 굉장히 힙한 건물이었다.
흑백 모노톤의 독특한 전시관 입구.
요즘 원목에 꽂혀있는 나는 이 전시관 문마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굉장히 무거워서 열기는 꽤 힘들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나란히 붙어있는 다른 디자인의 전시 포스터.
어두컴컴한 복도를 몇 개 지나고 나면 층별 안내도가 나온다.
1층 KoiskKiosk에는 국내외 크리에이터들이 제작한 문구류, 의류, 인센트, 비누 등의 굿즈, 그리고 헬카페와 콜라보한 kafe piknic이 있다.
2층에는 전시기획 회사 GLINT, 3층에는 미슐랭 레스토랑 ZERO COMPLEX (프렌치 다이닝)이 있고, 그 위로 4층에는 남산타워와 서울 시내가 내다보이는 루프탑이 있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목이 좀 타긴 했지만, 전시부터 보고 마음 편히 쉬려고 먼저 전시를 관람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전시관도 있었던 것 같지만 전시에 집중하고 싶어 카메라를 꺼내들지는 않았다.
아래 사진은 한 전시관에서 다른 전시관으로 이동하는 계단에 있던 사진들.
뉴에이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만 알았던 류이치 사카모토는, 또한 설치 미술가이자 사회 운동가였다. 색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소리, sound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든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을 쉽게 지나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능력인가.
살면서 우리는 셀 수 조차 없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
종이에 스치는 연필 소리,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부터 배관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아스팔트 바닥을 딛는 내 발자국 소리. 사브작거리는 낙엽소리.
이런 것들을 음악에 활용한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 신선하고, 또 데뷔한지가 그렇게나 오래되었는데도 항상 실험적인 정신을 가지고 예술에 임하는 그의 태도에 내가 부끄러워졌다.
전시를 보고 루프탑에 올라갔다.
날이 흐려 구름이 많긴 하지만 그렇기에 선선해서 좋았던 루프탑. piknic. 저 간판이 여기 시그니처인 듯 하다.
남산 타워가 훤히 내다보이고, 명동 시내의 높은 건물들도 멀리 보였다.
내려와서 kafe piknic 에서 나란히 커피 한 잔 씩.
헬카페는 안가봤는데 여기 아메리카노는 쓴맛이 강한 것 같다. 나는 신맛보다는 쓴맛이 좋아서 괜찮았다.
이 카페는 이 롱테이블과 연이어 매달린 샹들리에, 그리고 통유리창이 매력포인트다.
모든 의자가 유리창을 바라보고 앉게 배치되어 있다. 안쪽에 원형테이블이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단연 이 롱테이블이 인기가 많다.
Kioskkiosk도 구경했는데, 사고싶은 건 많았지만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또한 쓸데없는 지출을 막기 위해) 구경만 하고 그냥 나왔다.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공간에서 좋은 전시를 봐서 행복한 주말이었다.
다음에는 또 어디로 가볼까나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 rain을 함께 첨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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